최근에 닉센(NIKSEN)이라는 주제를 다룬 책들을 몇권 읽었다. 네델란드어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뜻하는 닉센은 네델란드인들의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을 한심하게 바라봤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시각이 우리나라는 지배적인 것 같다. 네델란드에서도 닉센은 과거에 부정적 단어로 사용되었다가 최근에 긍정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느끼도록 강요받고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그러다보니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무엇을 위해 그토록 달리는지 물어보면 어리둥절해질 때가 많다.
닉센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멍때리고 빈둥거려도 괜찮다고. 오히려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재충전하고, 에너지를 얻으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셈솟을 수 있다고.
닉센의 뜻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뜻하지 않는다. 일과 관련없이, 누구(또는 사회)의 강요나 권유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나의 즐거움과 휴식을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을 닉센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뜨개질이 닉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산책이 닉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커피 한잔이 닉센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나의 닉센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오로지 내가 재미로 시간을 보내는 것. 그래 그림을 그린다는 건 나에게 닉센이다.

이글은 패스트캠퍼스 챌린지 최종 후기다.
1월 24일 첫 스타트를 끊고, 50일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다.
회사를 다니면서 매일 잠깐이라도 시간을 낸다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리 쉬운 도전은 아니다.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시간 내기가 더 어려워지고, 술이라도 한잔 마시는 날은 빠뜨릴 가능성이 가장 높아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 시국이라 술자리도 줄어들고, 집에 일찍 가는 날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릴 시간이 확보된 것 같다. 그리고 가족과 회사 동료들에게 50일 챌린지 도전을 떠들고 다닌 것도 내 미약한 의지를 조금이라도 강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챌린지 결과를 떠나 이번 챌린지를 통해 다시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하게 된 것이 가장 좋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만화를 그리면서 수업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그림을 엄청 잘 그려서 특출난 재능을 보였다거나 누가 봐도 멋진 그림을 그릴 실력은 없었다. 사실 그림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으니까. 학교 미술 시간에 숙제로 그린 그림 수업이 내 인생의 그림 수업의 전부였다. 그리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그림이라는 것은 불필요한 시간 낭비일 뿐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림에 대해 다시 관심이 생긴 것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자유전공제도라서 공학부 내에서 학과가 결정되지 않았고, 2학년이 올라가면서 학부를 선택해야 했다. 어떤 과가 나에게 맞을까? 사실 아직도 그 답은 모르겠다. 취업률이 가장 높은 전자과가 1순위였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건축과에 끌렸다. 건축이 좋다기보다는 건축 디자인하는 그림이 좋았던 것 같다. 건축학 개론을 들으면서 숙제로 학교 캠퍼스를 그린 수업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연필을 손에 잡았지만 나름 공돌이들 사이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때 이후 건축과 그림 동아리도 기웃거리면서 그림에 대한 열정을 좀 불살라 볼까도 싶었지만 입시 후유증이라고 해야할까. 목표를 상실하고, 뭘 해야할지 모르는 방황의 시절이 시작되면서 그림에 대한 열정도 사그라들었다. 결국 건축과도 가지 않고, 전자과를 선택했다. 전자과가 좋다기보다는 그저 성적순으로 과를 선택했기에... 이노무 입시 체제에 완전히 길들여져 버린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어느덧 회사원이 되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기고, 정신없이 일에 치여 살면서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대학 시절 방황하면서 나에게 끊임없이 물었던 질문에 대해 아직도 내가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뭘 좋아하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인가? 내가 죽을 때 내 일에 대해 후회 없이 갈 수 있을까? 이런 답의 끝은 보통은 회사를 때려치고, 자기 사업을 한다거나 뭔가 다른 일을 벌이는 것이지만, 한평생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온 나에게 그 정도 결단력은 없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기에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뭔가 즐거운 일, 나만의 소소한 성취감을 느낄만한 것이 필요했다.

아이패드를 샀다. 일정 관리도 하고, 이북도 보고, 업무용으로 간간이 출장 갈 때도 쓰고, 이유야 많았다. 그리고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종이에 선을 긋는 느낌은 참 매력적이다. 사각사각 소리도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종이에 그린 그림은 보는 사람이 편안해진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패드를 선택했다. 내가 그린 그림을 한곳에 다 모아두고 싶어서. 비록 잘 그리진 못하지만 내가 시간을 들여 정성껏 그린 그림에는 애정이 간다. 누구에게 보여줄 용도가 아니더라도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그림을 그렸던 장소와 시간을 떠올리는 것도 좋다. 대부분이 미완성의 습작들 뿐이지만 내 그림을 모으면 내 그림 역사가 되니까. 비록 종이에 그리는 사각거리는 느낌은 없지만, 그것만 빼면 정말 편리하게 그림을 그리고, 저장할 수 있다. 종이 그림에는 없는 수많은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아이패드 드로잉이 갖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그런데 아이패드를 사도 그림을 열심히 그린다는 건 어려웠다. 뭔가를 하기 위해 시간을 만든다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뭔 일들이 그렇게 많은지... 지나고보면 한 게 없는데 뭔가 일정은 계속 채워진다. 스마트폰도 내 시간을 톡톡히 잡아먹고 있었다. 굳이 할 일 없이 뭔가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순간에도 내 손과 내 눈은 스마트폰에 홀린 듯 생각없이 나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시시한 인터넷 정보를 찾아 헤맨다. 아이패드를 살 때만 해도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바깥풍경을 그리는 내 모습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스마트폰으로 쓸데없는 사이트나 기웃거리면서 아까운 시간을 버리고 있었다. 계기가 필요했다.
우연히 발견한 패스트캠퍼스 챌린지 광고는 내 눈을 번쩍이게 만들었다. 이거다. 이걸로 시작해보자. 도전을 성공하면 환급까지 받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 제세공과금은 제외지만 내 승리에 대한 보상으론 충분했다. 고민없이 바로 회사 복지카드를 꺼내 결재해버렸다.
그전까지 온라인 강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이 컸다. 아무래도 현장 교육에 비해 집중력도 떨어지고, 동기부여도 안되는 것 같았다. 온라인 강의가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훌륭한 선생님이 직접 내 앞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챌린지를 통해 느낀 온라인 강의의 강점은 분명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는 점. 이것 하나만으로도 온라인 강의가 오프라인 강의를 모두 갈아치우고 있는지 충분한 이유가 된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복지 프로그램에 당첨되서 영어 회화 학원을 1년간 다닌 적이 있다. 매일 간 건 아니지만 주 2~3회 정도 다녀야 했다. 회사 지원이라 내 돈 안들이고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아 열심히 다녔지만 학원에 직접 가서 배워야 하는 것이 상당히 귀찮았었다. 그 정도도 귀찮아하면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해도 할 말 없지만, 회사 끝나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학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항상 초심처럼 가볍지는 않았던게 사실이다. 50일 챌린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 강의가 갖는 유비쿼터스 특성이 컸다. 게다가 온라인 강의는 내용을 작은 주제별로 얼마든지 잘게 나눌 수 있다. 오프라인 교육은 가는 노력이 들기 때문에 5분짜리 강의를 만들 수 없으니까. 온라인 강의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지하철에서 잠깐. 친구를 기다리는 사이에 잠깐. 점심 시간에 잠깐. 언제든 5분~30분 정도 시간만 있으면 들을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쓸데없는 정보 수집에 쓰지 않고, 나의 발전을 위해 쓰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 어디서든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강의 최종 후기인데, 강의 내용은 없이 내 이야기만 한 것 같다.
내가 들은 강의는 아이패드 드로잉 강의 중에서 ‘세상의 모든 감성 아이패드 드로잉’ 강의다.
9명의 작가가 각자의 노하우를 전수해준다는 컨셉이다.
작가가 사용한 브러쉬나 드로잉 파일도 공유해준다.
강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프로크리에이트 둘러보기 with 살랑
작고 귀여운 소품 드로잉 with 살랑
순간의 감성을 담은 일상 드로잉 with 미니
감각적인 선으로 깊이를 더한 크로키 with 도화지
붓터치로 멋을 더한 초상화 드로잉 with 벨라
기억하고 싶은 곳의 감성을 담은 여행 드로잉 with 듀박스
예쁜 손글씨로 감정을 말하는 캘리그라피 with 앤
나만의 스타일로 나를 알리는 브랜딩 일러스트 with 김잼
나만의 캐릭터로 굿즈 제작하기 with 지렁
나만의 손그림으로 데일리 다꾸하기 with 에뚜알
작가마다 4~10개 챕터로 나눠 강의를 진행하고, 각 챕터마다 여러개의 짧은 클립으로 구성되어 있다. 굳이 한 시간씩 앉아서 들을 필요가 없이 주제마다 나눠진 5분~20분 정도의 짧은 클립을 들으면 되기 때문에 시간 내기 힘든 직장인에게 좋다. 나는 50일 챌린지 동안 1~4까지는 순서대로 듣고, 중간을 잠깐 건너뛴 다음 캘리그라피로 넘어갔다. 캘리그라피를 배우면 내 서명을 좀 더 멋지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기 때문이다. 캘리그라피 강의를 다 듣지 못했지만 몇 가지 힌트는 얻은 것 같다.

50일 챌린지가 짧지 않은 기간이지만 이 기간에 모든 강의를 다 듣기엔 강의가 많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전부 한번은 다 들어본 다음 내가 원하는 그림 스타일을 찾아봐야겠다. 지금으로서는 크로키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스타일에 제일 부합하는 것 같은데, 여행 드로잉이나 나를 알리는 브랜딩 일러스트도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 아이패드로 이모티콘 그려서 투잡하는 강의도 패스트캠퍼스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 보다보면 다 듣고싶은 욕심이 커진다. 욕심은 줄이고, 실천은 늘려야 한다.
처음에 강의를 들으면, 금방 실력이 쑥쑥 성장할 줄 알았다. 강의가 도움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연습 없이 성장시켜주는 마법은 부리지 못한다. 강의에서 배운 것을 내 기술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습이 필요하다. 굳이 그림으로 밥먹고 살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 받으며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나만의 닉센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열심히 해보련다. 목적없는 즐거움이 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지켜봐야겠다. 패스트캠퍼스 챌린지는 끝났지만 내 챌린지는 계속 이어가야겠다. 50일이 100일이 되고, 5000일이 된다면 나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계속 힘차게 달려가보겠다. 패스트캠퍼스 아이패드 드로잉 강의가 궁금했을 분들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